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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강이제(康以齊)이고 어머니는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다.
그가 언제 왜 가덕리로 들어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출생연도가 확인되는 그의 손자 강우현(康
禹鉉)이 1888년생인 것으로 보아 그는 대략 1830년경에 출생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여 약 150년 전인
1860년 전후에 들어왔을 것으로 본다. 묘는 가덕리에 있으며 마을 내에서 한 번 이장하였다.
부인은 경주장씨(慶州張氏)이며 재명(載明)과 재만(載萬) 두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 강재명의 외아
들 강우현이 6남2녀를 낳았고 둘째아들 강재만은 주현(周鉉)과 치현(致鉉) 형제를 두었으니 이후 후
손이 많이 퍼졌다. 후손들이 현재 가덕리에는 두 가구만 살고 있고 주로 온양과 서울, 경기도 지역 곳
곳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다.
[3] 제주고씨 고석구
| 高錫九
<1862년(철종13년)~1916년>
조선 말기의 인물로 제주고씨(濟州高氏) 문충공파(文忠公派) 20세이며 시중공계 아산시 지역, 도고면
신통리 입향조이다. 현재 신통리에 거주하는 24세
(世) 고성호(高城培, 일명 城浩, 45세)의 고조부이
다. 선대는 10여대를 공주 이인면에서 거주했다.
고석구는 고한수(高漢秀)의 현손, 고응백(高應伯)
의 증손, 고용문(高龍文)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고
익우(高翼雨, 1839~1913)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
(金海金氏)로 김덕여(金德汝)의 딸이다.
그는 석현(錫鉉), 석구, 석철(錫喆), 석원(錫源) 4
형제 중 둘째이며 첫째인 고석현이 후사가 없어서
-제주 고씨의 묘의 상석-
실질적으로 장남 역할을 하게 되었다. 부인은 창원황
씨(昌原黃氏)로 황헌조(黃憲朝)의 딸이다. 그가 언제 어떤 이유로 이곳으로 들어와 자리 잡았는지는
불명확하다. 집안에 전해지기로는 선대가 살았던 공주 이인면 검상리 주변의 농경지가 강바닥이 높
아져 점차 경작이 어려워지자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도고 신통리에 이미 제주고씨가 살고 있
어서 그것을 인연으로 이 마을을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석구는 외아들 변택(弁澤)을 두었고 고변택 또한 외아들로 상근(相根)만을 두었다. 고상근이 4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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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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