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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I) | 공주를 사랑한 옛 사람 옛노래⑩
公山과 錦江을 읊다
백 원 철
공주대학교 교수
공주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장
저촌(樗村) 심육(沈金育 1685~1753)공이 남긴 문집 저촌유고(樗村遺稿)
47권은 필사본 형태로 전해져 오다가 근래에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문
집총간에 들어 간행되기에 이르렀는데, 그 중 1~2권에서 공주의 산하
(山河)에 대해 읊은 여러 수의 시를 접할 수 있다.
공의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부(父)는 영조 초기에 영의정을 지낸 심
수현(沈壽賢)이다. 문집에 행장(行狀) 등이 누락되어 있어, 공의 생애에
대하여 자세히 알 길은 없으나, 실록 등에 의하면 가문의 배경과 학행
(學行)이 있어 음관으로 벼슬에 나간 듯 하다.특히 당시 강화에 은거하
며 학 문 과 덕 행 으 로 명 성 이 있 던 하 곡 (霞 谷 ) 정 제 두 (鄭 齊 斗
1649~1736)의 문하에서 배워 성리학에 밝았던 듯 하다. 40여세에 왕자
사부로 처음 사환의 길에 들어선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경연에 자주
입시(入侍)하고 있음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아울러 청렴이 탁월하였던
듯 만년에는 대사헌을 다섯 차례나 역임하기에 이르렀다.
공이 공주에 관한 글을 여러 편 남기게 된 것은, 아마도 아버지 심수
현이 이곳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
다. 곧 아버지 심수현은 1714(숙종 40) 양양부사로 재직할 때 선정을
베풀어 포상을 받고 충청도 관찰사로 승진되었던 바, 이해 7월에 부임
하여 이듬해 10월에 승지로 제수되어 이임하였다. 그러므로 저촌공이
이 때에 공주에 머물거나 왕래하며 시문을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때의 나이는 29~30세였다.
먼저 금강에 대하여 읊은 것부터 살펴본다.
MAR/APRㆍ
1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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