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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서야 적이 크게 패하여 먼 바다 밖으로 도망을 쳤다.
도독(都督)이 배를 가까이 돌려오며,
「통제공 어서 나오시오.」
하고 부르자 완(莞)이 울며,
「숙부님은 돌아가셨습니다.」
하니 도독이 배위에서 몸부림을 치다가 세 번이나 넘어졌다.
「죽은 뒤에도 나를 구원해 주었다.」
하고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하였다. 두 진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바다를 진동시켰다.
영구를 아산으로 모셔올 때에는 모든 백성과 선비들이 울부짖으며 제사를 차려 명
복을 비는 행렬이 천리(千里)에 끊어지지 않았다.
조정에서도 제관을 보내어 조상하였으며 우의정(右議政)으로 증직했다. 갑진(甲辰)
년에는 일등공신으로 정하며 효충장의 적의협력 선무공신(效忠仗義 迪毅協力 宣武
功臣)의 호를 내리고 좌의정(左議政)으로 올렸다. 덕풍부원군(德豊府院君)을 봉하고
시호를 충무(忠武)라 했다. 좌수영(左水營) 근처에 사당을 지어 충민(忠愍)이라 사액
하였다. 호남 사람들은 수영(水營) 동쪽 산마루에 비를 세워 사모하는 뜻을 표하였
다. 기해(己亥)년 2월에 아산의 어름목에 장사를 지내니 거기는 선산이다.
공은 담력이 보통을 능가했으며 뜻이 굳세었다. 몸가짐이 규모가 있는 학자와 같았
고, 효도와 우애는 타고난 천성이었다. 집안에서도 행실이 돈독하여 일찍 죽은 두
형이 남긴 조카들을 자식같이 길렀다. 일용하는 물품과 혼례를 치루는 일까지도 조
카를 먼저 시키고 자기 아들은 뒤에 했다. 죄 없이 옥에 갇혀있을 때에도 죽고 사는
문제로 마음을 동요하지 않았다. 공은 본시부터 이와 같이 수양해 왔으므로 지혜와
생각을 내면 한 가지도 빠짐이 없었다. 적의 정형 헤아리기를 귀신같이 하여 마침내
승리를 거두어 호서(湖西) 호남(湖南) 수 천리 땅을 온전하게 하여 나라를 다시 일으
키는 근본이 되게 하였다.
바다를 가로막아 덮쳐 오는 적의 형세를 꺾음은 당나라 현종 때의 충신으로 합심하
여 안록산의 군을 맞이하여 싸우다 전사한 저 장순(張巡)이나 허원(許遠)과 같았다.
몸소 힘을 다하다 죽은 것은 저 제갈무후(諸葛武后)와도 같았다. 나라일로 죽은 것
은 같을지라도 큰 공을 거둔 이는 오직 공 한 분뿐이다.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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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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